솔직히 저는 가리산을 만만하게 봤습니다. 출발 전 여러 후기를 찾아봤는데 "육산이라 걷기 좋다"는 말이 많았거든요. 육산이란 암석보다 흙과 나무로 이루어진 산을 뜻하는 등산 용어로, 경사가 완만하고 발바닥에 충격이 적어 초보자도 비교적 편하게 오를 수 있는 유형입니다. 그 말만 믿고 가볍게 올라갔다가 정상 직전에 완전히 다른 산을 만났습니다.

계곡길에서 가삽고개까지, 예상보다 긴 오르막
가리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초반은 정말 편안합니다. 계곡을 따라 난 등산로는 경사가 거의 없고, 물소리가 귀 옆에서 계속 들려서 피로감보다 상쾌함이 앞섭니다. 주차장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합수목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가삽고개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합수목이란 두 개 이상의 물줄기가 합쳐지는 지점을 의미하는 산행 용어입니다. 계곡 지형이 복잡한 산에서는 이런 분기점이 길 찾기의 기준점이 되기 때문에, 미리 지도에서 위치를 파악해 두면 좋습니다. 제가 직접 걸어보니 이정표가 비교적 잘 설치되어 있어서 길을 잃을 걱정은 크지 않았습니다.
갈림길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경사가 시작됩니다. 중간에 잣나무 숲 구간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이번 산행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습니다. 피톤치드(phytoncide) 농도가 높은 침엽수림 특유의 향이 코끝을 자극하는데, 피톤치드란 식물이 해충이나 세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출하는 천연 항균 물질입니다.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침엽수림에서의 피톤치드 농도는 활엽수림보다 평균적으로 높게 측정되며, 스트레스 호르몬 완화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산림청).
가삽고개까지 걸린 시간은 주차장에서 출발해 약 1시간 20분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완만한 육산"이라는 인상과 달리, 제 경험상 계곡 구간을 벗어난 뒤의 경사는 생각보다 꾸준하게 이어집니다. 무릎이 약하거나 평소 산행 빈도가 낮은 분이라면 이 구간에서 이미 체력 소모가 상당할 수 있습니다.

가삽고개에서 정상까지, 반전의 시작
가삽고개 삼거리에서 정상까지의 거리는 약 900m입니다. 이 구간에 대해 일반적으로 "편안한 능선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절반은 맞고 절반은 다릅니다. 고개에서 정상 직전까지는 정말 산책로 수준의 완만한 능선 숲길이 이어집니다. 30분 정도를 그냥 천천히 걸으며 숲을 즐기는 느낌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정상 아래에 가까워지는 순간, 갑자기 지형이 완전히 바뀝니다. 암릉(巖稜) 구간이 시작되는데, 암릉이란 바위가 날카롭게 솟아 있는 능선 지형으로 손발을 모두 써야 하는 스크램블링(scrambling) 방식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크램블링이란 등반과 하이킹의 중간 단계로, 로프 없이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해 바위를 오르는 기술을 뜻합니다.
1봉, 2봉, 3봉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봉우리를 차례로 오르는 구간은 짧지만 강도가 상당합니다. 2봉에서는 큰바위얼굴이라는 전망 포인트가 있는데, 거대한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홍천 일대의 산세는 그 자체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올라가는 동안 아찔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올라서고 나면 그게 또 가리산의 매력이라는 걸 인정하게 됩니다.
이 암릉 구간에서 주의해야 할 핵심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바위 표면이 젖어 있을 때는 미끄럼 사고 위험이 크게 높아지므로 강우 직후 산행은 피할 것
- 릿지화(암릉 전용 등산화)나 밑창 마찰력이 강한 등산화 착용을 권장
- 배낭 무게가 무거울수록 중심이 뒤로 쏠려 낙상 위험이 커지므로 짐을 최소화할 것
- 고소공포증이 있는 경우 2봉 이후 구간에서 심리적 부담이 클 수 있으므로 사전에 고려할 것
정상 조망과 하산, 솔직한 평가
정상에 오르면 홍천의 산들이 겹겹이 펼쳐지는 조망이 기다립니다. 맑은 날에는 멀리까지 시야가 열리는 편이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조망 자체는 설악산이나 태백산처럼 사방이 탁 트인 산과 비교했을 때 다소 제한적입니다. 가리산은 전체적으로 숲이 울창한 산이기 때문에, 정상과 일부 암릉 구간을 제외하면 올라가는 내내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 어렵습니다. 조망 산행을 주목적으로 오시는 분에게는 이 점이 아쉬울 수 있습니다.
정상에서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었다가 무쇠말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무쇠말재란 정상 남쪽에 위치한 안부(鞍部)로, 안부란 두 봉우리 사이의 낮은 지점을 뜻하는 지형 용어입니다. 이 방향으로 하산하면 다시 자연휴양림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가 완성됩니다.
정상 직후 내리막은 오르막 못지않게 가팔랐습니다. 국립공원공단 자료에 따르면 하산 시 무릎 관절에 가해지는 하중은 평지 보행의 약 3~4배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국립공원공단). 실제로 이 구간에서 무릎에 상당한 충격이 느껴졌고, 트레킹 폴(등산 스틱)이 없었다면 더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급경사 구간을 지나면 다시 편안한 숲길이 이어지면서 주차장까지 비교적 수월하게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전체 산행 시간은 약 4시간 30분 정도였습니다.
가리산, 이런 분에게 맞고 이런 분에게는 안 맞습니다
가리산은 "쉬운 산"도 "어려운 산"도 아닙니다. 정확히는 중간 어딘가에 있는 산이고, 그 안에서도 구간마다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제가 직접 걸어본 결론은 이렇습니다.
일반적으로 100대 명산이라고 하면 난이도가 높거나 대단한 절경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가리산의 매력은 그 방향이 아닙니다. 조용한 계곡길, 잣나무 숲길, 그리고 정상 직전의 암릉이 순서대로 등장하는 구성 자체가 이 산의 정체성입니다. 어느 하나가 특출한 게 아니라, 다양한 지형을 한 코스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가리산의 진짜 강점입니다.
다만 여름철에는 계곡 구간에서 벌레가 많고, 습도가 높아 불쾌지수(THI, Temperature-Humidity Index)가 올라갑니다. 불쾌지수란 기온과 습도를 결합해 체감 불쾌감을 수치화한 지표로, 숲속이라도 무풍 상태에서는 생각보다 덥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름 산행 시에는 긴 소매와 방충 스프레이를 꼭 챙기시기 바랍니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지 않은 점도 현실적인 단점입니다. 수도권에서 출발하면 이동 시간이 상당하기 때문에 당일치기를 계획한다면 출발 시간을 여유 있게 잡는 것이 좋습니다.
가리산은 '한 방의 절경'을 기대하는 산이 아닙니다. 걷는 내내 다양한 산의 표정을 느끼고 싶은 분, 특히 조용한 숲길과 짜릿한 암릉을 하루에 모두 경험하고 싶은 분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산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을 단풍이 들 시기에 다시 한 번 올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암릉 위에서 내려다보는 단풍 든 능선이라면, 여름에 아쉬웠던 조망의 아쉬움을 충분히 채워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