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엔 964m라는 숫자만 보고 "그냥 가볍게 다녀오면 되겠네"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양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국립공원에 속한 산이라니 정비도 잘 됐겠거니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산을 올려다보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바위 봉우리들이 날을 세우고 솟아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도락산 암릉 구간, 실제로 걸어보니
출발하고 10분도 안 돼서 옷을 벗었습니다. 아침 공기는 서늘했는데 경사가 워낙 가팔라 금세 땀이 났습니다. 도락산은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왕복 약 7km 코스인데, 실제로 걷다 보면 거리보다 체력 소모가 훨씬 크게 느껴집니다.
산행 전문 용어로 암릉(巖稜)이라고 하는 구간이 있습니다. 암릉이란 바위로 이루어진 능선을 뜻하는데, 일반적인 흙길 등산로와 달리 손발을 함께 써서 바위를 짚고 오르내려야 하는 구간입니다. 도락산은 이 암릉 구간이 전체 코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제가 직접 걸어보니 특히 제봉에서 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구간은 발디딜 곳을 한 발 한 발 확인하면서 움직여야 할 정도였습니다.
형봉 인근에는 고인돌처럼 생긴 바위가 얹혀 있고, 그 옆에서 내려다보면 충북 단양 일대의 산세가 겹겹이 펼쳐집니다. 날이 맑은 날에는 소백산 비로봉까지 선명하게 보인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가 간 날에도 소백산 능선이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황정산과 수리봉 방향도 잘 보였고, 멀리 연화봉의 뾰족한 실루엣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선봉에는 1년 내내 마르지 않는다는 샘물이 있습니다. 바위 사이에서 물이 솟아 담기는 구조인데, 전설에 따르면 물을 퍼가면 하늘에서 비가 내려 다시 채워진다고 합니다. 이 샘물 자리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잠깐 쉰 시간이 산행 전체에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코스 중 주요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주차장 → 제봉 약 3km, 오르막 급경사 구간 포함
- 제봉 → 형봉: 완만한 능선 이후 바위 구간 반복
- 신선봉: 샘물과 전망 포인트, 소백산 조망 가능
- 체험봉 → 건봉: 하산 구간, 선바위 여러 곳 통과
- 건봉 전망대: 올라온 능선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뷰 포인트
하산 방향으로 체험봉과 건봉 구간을 지나면서 선바위(立石)를 여러 개 만났습니다. 선바위란 지표면에 수직으로 솟아오른 바위 기둥을 가리키는 지형 용어인데, 도락산에는 이 선바위가 코스 곳곳에 워낙 많아서 어느 것이 실제 명칭상 '선바위'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큰 선바위와 작은 선바위가 따로 있다고는 하지만, 그 외에도 비슷한 형태의 바위들이 능선 여기저기 서 있어 사실상 '선바위 투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코스입니다.
도락산 산행 난이도, 가볍게 봐도 될까
"높이만 보면 괜찮은 산"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도락산을 절대 쉬운 산이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국립공원 내 산이라고 해서 무조건 잘 정비된 완만한 코스를 기대하면 안 됩니다.
산행 난이도를 평가할 때 전문적으로는 노출도(Exposure)와 기술 등급을 함께 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출도란 낭떠러지나 개방된 바위 구간에 얼마나 많이 노출되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이라면 이 수치가 높은 코스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도락산은 이 노출도가 꽤 높은 편입니다. 전망 바위 위에 올라섰을 때 발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구간이 여러 곳 있었고, 제가 경험한 것만 해도 손을 써서 몸을 끌어올려야 하는 구간이 두세 곳은 됐습니다.
일반적으로 국립공원 산은 초보자도 오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도락산은 다릅니다. 실제로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에서 제공하는 산행 정보를 보면 도락산은 "상급" 또는 "중상급" 코스로 분류되어 있으며, 암릉 구간에서 안전 장비 착용을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또한 산림청이 지정한 100대 명산에 포함된 산답게 사람이 꽤 많이 찾습니다. 내군기 방향의 최단 코스로 올라오는 등산객도 많고, 주말 정상부는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붐비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산림청 100대 명산 기준에서 도락산은 "기암괴석과 조망이 뛰어난 산"으로 선정되어 있는데, 이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건 직접 가보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출처: 산림청).
저처럼 처음 가는 분이라면 특히 하산 구간에 주의해야 합니다. 올라갈 때는 힘으로 버틸 수 있지만, 내려올 때는 무릎 관절에 부담이 집중됩니다. 이를 슬개골 충격(Patellar Impact)이라고 부르는데, 내리막에서 체중이 슬개골 주변에 반복적으로 실리는 현상을 뜻합니다. 바위를 딛고 내려오는 구간이 많은 도락산에서는 이 부담이 특히 크게 느껴졌습니다. 무릎 보호대나 등산 스틱을 챙기는 게 좋다는 얘기가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는 걸 그날 하산하면서 몸으로 알았습니다.
눈이나 비가 온 직후에는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암릉 구간은 습기가 남아 있으면 미끄럼 위험이 크게 올라갑니다. 겨울에는 얼음이 바위 틈에 얇게 껴 있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갑자기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산을 오르던 중 그늘진 바위 아래 얼음 구간이 몇 군데 있었고, 일행 중 한 명이 발을 헛디딜 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도락산은 힘들게 올라간 만큼 돌아오는 게 확실한 산입니다. 건봉 전망대에서 올라왔던 능선 전체를 내려다봤을 때 "저걸 내가 다 걸어온 건가" 싶은 감각이 있었습니다. 뿌듯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왔습니다.
도락산은 힐링보다는 도전에 더 가까운 산입니다. 여유 있게 능선을 걷고 싶은 날에는 소백산이 나을 수 있고, 바위를 오르고 몸을 쓰는 산행을 원한다면 도락산이 훨씬 잘 맞습니다. 눈이나 상고대 없이 찾아가도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점은 직접 가보고 나서야 확신하게 됐습니다. 암릉 산행에 어느 정도 익숙하고, 바위 위에서 조망을 즐기는 것이 좋다면 도락산은 오래 기억에 남을 산이 될 것입니다. 단, 출발 전에 날씨 확인과 무릎 보호 장비 준비는 꼭 챙기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