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443m, 강원도 인제에 자리한 방태산은 100대 명산 98호입니다. 처음 이 산에 발을 들였을 때 저는 솔직히 이 정도일 줄 몰랐습니다. 이름이 덜 알려진 만큼 사람이 없고 조용하겠거니 했는데, 막상 걸어보니 체력과 판단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산이었습니다.

개인약수터에서 주옥봉까지, 코스의 실제 모습
방태산 산행의 출발점은 개인약수터 주차장입니다. 자연휴양림 내부에는 주차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 주차장을 기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주차장에서 개인약수터까지는 약 1.5km, 완만한 계곡길이라 초반에는 가볍게 느껴집니다.
개인약수는 탄산이 함유된 천연 광천수입니다. 여기서 탄산 광천수란 지하에서 이산화탄소가 용해된 상태로 솟아나는 자연 용출수를 말하는데, 시판 탄산수처럼 인공적으로 주입된 것이 아니라 지질 구조에서 자연 발생한 것입니다. 구멍 크기가 가로 약 30cm, 세로 약 20cm 남짓한 작은 암반 틈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광경은 제가 직접 봐도 신기했습니다. 마실 수 있는 물이 지면에서 그냥 올라온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거든요.
개인약수터에서 주옥봉 방향으로 방향을 틀면 그때부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등산로의 트레일 마킹(trail marking), 즉 나뭇가지나 바위에 붙어 있는 방향 표시 리본이 상당히 불규칙하고 잘못된 시그널도 섞여 있어 길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저는 이 구간에서 실제로 한 번 잘못된 방향으로 발을 뗀 적이 있어서, 처음 오시는 분들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계곡 구간을 약 1km 더 따라가면 능선으로 오르는 급경사 구간이 나타납니다. 이 오르막을 통과하면 비로소 능선 稜線(능선)에 진입하게 됩니다. 능선이란 산의 꼭대기와 꼭대기를 잇는 등성이 선을 의미하는데, 이 구간부터는 경사가 한결 완만해지고 시야도 넓어집니다. 삼거리에서 배달음봉을 거쳐 주옥봉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조릿대가 대규모로 자라 있어 길 전체를 뒤덮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걸었을 때 이 조릿대 대부분이 고사(枯死)한 상태였는데, 기후 변화로 인한 고산 식생 변화의 일종으로 보입니다. 지리산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보고된 바 있어 씁쓸하더군요.
주차장 기준으로 3시간 55분을 걸어 도착한 주옥봉 정상(1,443m)에서는 강원도 산군이 겹겹이 펼쳐지는 조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 화려한 암릉은 없지만 깊고 두꺼운 산세가 주는 압도감이 있었고, 정상의 공기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그 성취감은 제가 직접 걸어봐야만 알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방태산 주옥봉 코스에서 확인해야 할 핵심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출발점은 개인약수터 주차장(자연휴양림 내 주차 불가)
- 주차장 → 개인약수터 구간: 약 1.5km, 완만한 계곡길
- 개인약수터 → 능선 진입 구간: 계곡길 1km 후 급경사, 길 불명확 주의
- 능선 구간: 삼거리에서 배달음봉 → 주옥봉 순서, 조릿대 고사 구간 많음
- 총 산행거리(주옥봉 + 구룡덕봉 순환): 약 14.6km, 실 소요시간 약 8시간 30분
구룡덕봉 하산 코스, 솔직히 권하기 어렵습니다
주옥봉 정상 이후 구룡덕봉(1,338m)을 거쳐 개인약수터로 하산하는 순환 코스는 지도상으로는 깔끔해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실제로 걸어본 결과, 이 하산 코스는 초중급 등산객에게 강력히 비권장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구룡덕봉 삼거리에서 계곡 방향으로 내려가는 루트가 최근 공사로 재정비되었는데, 새로 낸 목재 계단이 풀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정표 바로 아래에 계단이 있음에도 저 역시 길을 찾지 못하고 한동안 알바(등산 용어로 길을 잘못 들어 헤매는 것)를 했습니다. 알바란 정해진 등산로를 벗어나 목적지와 다른 방향으로 걷게 되는 상황을 뜻하는데, 체력 소모는 물론 하산 시간까지 크게 늘어납니다.
계곡 건널목도 문제입니다. 하산 경로에는 계곡을 여러 차례 가로질러야 하는 도하 구간이 반복됩니다. 수위가 낮을 때도 바위가 커서 건너기 쉽지 않았는데, 비가 조금이라도 내린 직후라면 아예 통행이 불가능한 수준이 될 것입니다. 산림청의 등산로 안전 관리 기준에 따르면 계곡 도하 구간은 수위 변화와 지형 특성을 고려해 위험 등급을 별도 지정해야 하는 구간에 해당합니다(출처: 산림청).
구룡덕봉 자체의 전망도 아쉬움이 있습니다. 정상 표지석이 코팅지 형태로 붙어 있고, 주변이 나무로 가득 차 있어 조망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먼 길을 돌아서 왔는데 하늘만 조금 보이는 정상이라니, 솔직히 실망스러운 지점이었습니다.
등산로 위험도를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인 등산로 등급제를 살펴보면, 방태산 구룡덕봉 순환 코스는 길 불명확 구간, 반복 도하, 급경사, 편의시설 부재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합니다. 등산로 등급제란 국립공원공단이 탐방로의 경사도, 노면 상태, 위험 구간 등을 종합 평가해 난이도를 분류하는 제도입니다(출처: 국립공원공단).
이 코스를 어떻게든 걷겠다면 아래 조건을 갖추고 가시길 권합니다.
- 최근 강수 이력 없는 날씨, 맑은 상태에서만 출발
- 허벅지 근력과 무릎 관절 상태가 충분히 준비된 상태
- GPS 앱 또는 산행 전 루트 확인 철저
- 8시간 이상 산행 가능한 식수 및 행동식 준비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개인약수터에서 주옥봉을 왕복하는 원점 회귀 코스를 권합니다. 무리하게 순환 코스를 욕심 내다가 하산길에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실제로 많다고 느꼈습니다.
방태산은 100대 명산 중에서도 자연 원시성이 잘 살아 있는 산입니다. 깊은 계곡, 탄산 약수, 조용한 능선길은 분명히 매력적입니다. 다만 그 매력을 안전하게 누리려면 코스 선택을 신중히 해야 합니다. 처음 방문이라면 주옥봉 왕복을 먼저 경험해보고, 이후 체력과 루트 파악이 된 상태에서 순환 코스를 시도하는 것이 현실적인 순서일 것입니다. 가을 단풍철에 다시 한번 주옥봉 정상에 서 보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