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백덕산은 "겨울 설경이 멋진 산"이라는 말만 듣고 찾아갔는데, 정상에서 마주한 풍경은 그 말이 절제된 표현이었다는 걸 깨닫게 해줬습니다. 해발 1,350m 강원도 육산(肉山)의 매력과 한계를 동시에 확인한 하루였습니다.

백덕산 산행 코스, 일반적인 소문과 실제는 달랐다
백덕산은 평창군과 영월군 경계에 자리한 산으로, 강원 20대 명산 중 하나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숲길 위주라 완만하고 편안한 산"이라는 인상이 퍼져 있는데, 제가 직접 걸어봤더니 이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문재터널 들머리에서 시작하는 코스는 낙타등 능선(縦走路)이라 불리는 구간이 이어집니다. 낙타등 능선이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구간으로, 한 번의 대형 경사 대신 크고 작은 봉우리를 연속으로 넘는 형태를 말합니다. 처음엔 "업앤다운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두 시간이 넘어가면서 이 반복이 예상보다 체력을 빨리 소진시킨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백덕산을 걸으면서 주의해야 할 지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문재터널 주차장: 약 6대 수용 가능한 소규모 주차장. 산악회 버스 몇 대만 와도 금방 포화 상태가 됩니다.
- 경사 구간: 정상 500m 전 구간이 이번 코스 중 가장 가파른 편입니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무릎 부담이 더 큽니다.
- 겨울 산행 시 아이젠(crampons) 필수: 아이젠이란 눈길과 빙판에서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등산화 밑에 장착하는 금속 발톱 장치입니다. 이날 하산 구간에 눈이 쌓인 사면이 나왔는데, 아이젠 없이는 상당히 위험했을 것 같습니다.
전체 거리는 11.4km, 쉬는 시간 제외하고 약 다섯 시간 반 정도 소요됐습니다. "당일치기로 가볍게 다녀올 만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체력이 약하거나 산행 경험이 많지 않다면 이 거리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됩니다.
국립등산학교에 따르면 등산 중 발생하는 부상의 약 60% 이상이 하산 시 무릎 및 발목 부위에 집중된다고 합니다(출처: 국립등산학교). 백덕산처럼 낙타등 능선이 반복되고 내리막이 긴 코스에서는 등산스틱(트레킹 폴)을 반드시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설경 조망, "멋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이유
백덕산 설경이 유명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제가 직접 보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됐습니다. 정상에 도착해서야 그 말이 실제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해발 1,350m 정상에서 바라본 조망은 사방이 트여 있었습니다. 영월과 평창의 산줄기가 겹겹이 펼쳐지고, 태화산, 소백산 비로봉, 금수산까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위에 쌓인 눈이 바람에 날려 내리는 모습이 마치 눈이 내리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장면이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 경이로움이었습니다.
이날 기온은 영하 9도였는데, 바람이 거의 없는 날이었습니다. 이 부분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체감온도(體感溫度)는 실제 온도와 큰 차이를 만드는 요소인데, 체감온도란 기온에 바람의 강도와 습도를 더해 인간이 실제로 느끼는 온도를 수치화한 것입니다. 바람이 강한 날이었다면 정상에서 오래 머물기 어려웠을 텐데, 이날은 외투를 벗어도 될 만큼 쾌적한 조건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겨울 산행에서 정상 조망을 즐기려면 운이 따라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백덕산은 날씨가 맑고 바람이 없는 날을 골라 가면 그 보상이 확실히 주어지는 산입니다. 특히 백덕산이라는 이름 자체가 "삼봉의 경관이 마치 하얀 덕(德)처럼 펼쳐진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전해지는데, 설경을 직접 보고 나니 이름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사자산(1,106m)을 지나 백덕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구간에서 처음 만나는 큰 조망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조망터 하나 때문에 이 코스로 올라가는 것이 맞는 선택이라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중간 조망이 적다는 육산의 단점을 이 한 지점이 상당 부분 보완해줬습니다.
겨울 백덕산, 이것만 챙기면 훨씬 편하게 오를 수 있다
백덕산은 화려한 관광시설이나 케이블카가 없는 산입니다. 그 대신 깊은 숲과 정상 조망이 전부인데, 그 전부가 생각보다 강렬합니다. 다만 준비 없이 갔다간 즐거움보다 고생이 앞설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이 코스를 걸으며 체감한 겨울 백덕산 필수 준비물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이젠(crampons): 하산 구간 눈길이 기대 이상으로 미끄럽습니다. 없으면 상당한 위험 부담이 생깁니다.
- 등산스틱(트레킹 폴): 낙타등 능선 반복 구간과 긴 내리막에서 무릎 부담을 크게 줄여줍니다.
- 보온 레이어(insulation layer): 보온 레이어란 외투와 베이스레이어 사이에 입는 중간 보온 옷으로, 정상 체온 유지를 위한 핵심 장비입니다. 이날 정상에 바람이 없었음에도 땀이 식으면서 체온이 내려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 행동식과 충분한 수분: 산 중간에 매점이나 식수대가 전혀 없습니다. 5
6시간 산행 기준으로 물 1.5L 이상, 행동식 23개는 반드시 챙겨야 합니다.
한국산악회 자료에 따르면 저체온증(低體溫症)은 산에서 발생하는 응급 상황 중 가장 빠르게 악화되는 유형 중 하나로, 특히 정상 부근에서 바람과 체온 저하가 동시에 발생할 때 위험도가 크게 높아진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산악회). 겨울 백덕산처럼 정상 노출 구간이 있는 산에서 방풍·보온 장비를 빠뜨리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실질적인 위험 요소가 됩니다.
백덕산은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하게 산행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긴급 상황 시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준비를 충분히 하고 간다면, 그 고요함이 온전히 즐거움으로 돌아옵니다.
백덕산을 다녀오고 나서 단 하나의 후회가 있다면, 더 일찍 왔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조망이 부족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제 경험상 이건 틀린 말이었습니다. 날씨가 맑은 날 아이젠과 등산스틱을 챙겨서 간다면, 백덕산은 강원도 명산 중에서도 손꼽힐 만한 산행 경험을 선사합니다. 처음 방문이라면 문재터널에서 시작해 먹골로 하산하는 편도 코스를 권합니다. 돌아오는 차 회수 계획만 잘 세워두면, 이 코스가 백덕산의 매력을 가장 충실하게 담아내는 루트입니다.